S클래스 시승을 준비하면서 새삼 다시 보게 된 광고가 있다. 정장을 차려입은 사자(성공한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를 은유한 것이라고 한다)가 하루종일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드디어 차를 몰고 퇴근길에 오르는데, 도로 정체로 폭발 직전에 이른다. 하지만 짜잔! 센터콘솔의 컨트롤러 혹은 버튼 터치로 간편히 활성화할 수 있는 ‘무드 체인지 테크놀로지’ 한방에 심신의 안정을 찾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가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지난해 10월 S-클래스 부분변경 모델 출시에 맞춰 나온 <King of the City Jungle>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새로운 장비인 에너자이징 컴포트 컨트롤(ENERGIZING Comfort Control)의 효과를 축약해 보여준다. 장비를 언급하진 않고 “인텔리전트 드라이브를 느껴보라”고 에둘러 말한다. 

에너자이징 컴포트 컨트롤은 영상과 음악, 온도, 향, 시트 온열/통풍/마사지, 조명을 통합제어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 승객의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장비로 상쾌함, 따뜻함, 활력, 기쁨, 안락함, 트레이닝 등 6가지 프로그램을 10분씩 활성화할 수 있다. 그 효과를 보려면 인텔리전트 드라이브의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다. 차간거리나 차로 유지, 장애물에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에서는 광고에서처럼 도로의 차들이 전부 사라진 것 같은 효과는커녕 정신 사나운 자극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행히 성능이 개선된 신차의 인텔리전트 드라이브는 카메라와 레이더를 이용해 전방 및 주변 교통상황을 파악해 안전하고 편안한 주행을 돕는다. 20~210km/h에서 차간거리 및 속도를 제어하는 능동형 디스턴스 어시스트 디스트로닉(Active Distance Assist DISTRONIC)과 차로 유지를 돕는 능동형 조향 어시스트(Active Steer Assist), 차와 보행자 등을 인식해 부분제동을 가하는 능동형 브레이크 어시스트(Active Brake Assist),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스티어링 휠을 조작할 때 같은 방향으로 토크를 보태 신속한 회피를돕는 충돌회피 조향 어시스트(Evasive Steering Assist)가 여기에 포함된다. 

인텔리전트 드라이브가 첨단 안전기술이나 반자율주행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에너자이징 컴포트 컨트롤은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웰빙이라는 구체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미래의 자동차에 건강과 관련된 요소를 어떻게 구현할지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물이다. 가령 F 015 콘셉트카처럼 완전한 자율주행으로 운전자의 역할이 줄어들면 차 안의 환경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현재다. 사진촬영을 위해 사자 가면과 정장을 준비할 것인지 한참 고민했던 기자를 비웃듯이 시승차엔 에너자이징 컴포트 컨트롤이 빠졌다. 기본장비가 아닌 까닭이다. 전방 스테레오 카메라가 노면을 읽어 순간적으로 댐핑압을 조절, 실내에서 느껴지는 충격을 최소화함으로써 천상의 승차감을 제공한다는 S-클래스의 매직 보디 컨트롤이 뒷바퀴굴림 S 560 등 특정모델에만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잠시 허무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더 직관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마사지 기능이나 변화무쌍한 조명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다운 추위에 지친 기자의 엉덩이와 등짝을 반겨주는 시트의 에너자이징 마사지 기능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주는 마사지 솜씨가 탁월하기도 하지만 등짝에 달군 돌을 올려놓듯 따뜻하게 눌러주는 재주가 백미다. 머리를 살포시 안아주는 헤드레스트, 온열 기능이 있는 팔걸이와 함께 사용하면 뭔가에 취하는 것 같은 나른한 개운함이 온몸에 퍼진다. 

‘64가지’라고 명시된 실내조명 색상은 메뉴를 보면 건드리기 겁날 정도로 복잡하다. 실내 온도를 높이거나 낮춤에 따라 전체 조명이 붉게, 파랗게 바뀌기도 하고 다중색상을 선택하면 주기적으로 은은하게 색깔이 바뀌면서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신비감을 제공한다. 뒷좌석 어깨 너머로 흐르는 조명띠는 차 안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꿔준다. 

5인승이지만 가운데 팔걸이를 내리면 4인승처럼 바뀌는 뒷좌석에선 버튼 하나를 꾸욱 누르는 것만으로 조수석을 멀리 앞쪽으로 치워버릴 수 있다. 시트가 앞으로 전진하면서 방석이 높아지고 등받이가 세워지며 헤드레스트는 앞으로 접히고 발판이 펼쳐진다. 기자의 발끝이 발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까지 물러난다. 과연 롱 버전답다. 

사실 겉모습만 봤을 땐 롱 버전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측면만 보면 롱 버전은커녕 E-클래스 같기도 하다. E-클래스에서 보던 경합금 휠을 끼운 이유도 있지만 전작들과 달리 롱 휠베이스 버전을 우선 설계해 겉보기에 자연스런 외관을 만들어낸 영향이 큰 것 같다. 

실은 한참 운전을 하고도 표준형보다 뒤가 더 긴 차(차체길이 5.28m)라는, 그래서 운전하기 거추장스럽다는 느낌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만큼 기계적으로도 자연스럽다. 차간거리나 차로 유지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는 인텔리전트 드라이브의 은혜로움을 경험하기 전부터 그랬다. 360도 카메라와 스마트폰을이용한 원격주차 기능이 있어 좁은 길이나 주차장에서도 부담이 적다. 

부분변경과 함께 2스포크에서 3스포크로 바뀐 스티어링 휠도 중심 부근이 원통에 가까워 좀더 운전자용 차에 가까운 분위기다. 몹쓸 고집처럼 별도의 레버로 묶었던 디스트로닉, 크루즈컨트롤 스위치를 전면부로 옮기고 E-클래스에서 선보인 터치패드(좌우가 각각 계기판과 중앙 스크린을 제어한다)도 받아들여 두손이 더 오랫동안 스티어링 휠에 머물 수 있다. 

오른손 엄지 부근의 토글 스위치를 위로 올리면 음성명령 기능을 쓸 수 있다. 새차는 한국어 인식이 가능하지만 아직 말귀를 잘 알아듣진 못한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내비게이션의 반응도 흡족하진 않다. 얼마전 해외 시장에선 MBUX를 선보였고 우리나라에선 KT와 제휴해 LTE 기반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한국내 R&D센터 인원을 확충하는 등 투자를 늘리겠다니 그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음성인식을 활성화하면 송풍구의 히터음이 싸악 줄어들고 취소하면 원래의 바람소리를 내는걸 보니 기특하다. 잦아든 바람소리에 비로소 이 차가 디젤인걸 상기해냈다. 그 정도로 디젤차의 특성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분명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 미세한 진동도 올라오지만 시승날처럼 송풍구가 온풍을 불어내느라 쉼없이 일할 땐 동승자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운전자도 거의 잊고 다닐 만하다.

시승차는 S 400 d 4매틱 롱이다. 이번 부분변경과 함께 새로워진 파워트레인의 수혜를 봐 엔진이 V6에서 I6로 바뀐 차 중 하나다. 참고로 국내 판매 중인 S 450은 기존 V6 3.0(성능이 367마력으로 높아져 모델명이 400에서 450으로 바뀌었다)을 쓰고, S 350 d와 S 400 d의 디젤 3.0만 직렬 6기통으로 바뀌었다. 

OM642 V6 3.0 디젤(258마력, 63.2kg·m)을 대체한 새 OM656 I6 3.0 디젤은 가변밸브 리프트,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 나노 슬라이드 실린더 코팅 등으로 연료 소모와 배기가스를 줄인, 벤츠에서 가장 뛰어난 디젤 엔진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S 350 d는 286마력, 61.2kg·m, S 400 d는 340마력, 71.4kg·m이다. 

국내에선 엔트리급인 S 350 d만 숏보디이고 나머진 모두 롱보디. S 400 d가 1,200~3,200rpm의 실용영역에서 발휘하는 최대토크는 S 560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어서 차체 길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뿐사뿐 나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만 가속페달의 반응은 굉장히 진중해 움찔거리며 체신머리없이 나대지 않는다. 코너링 때 바깥쪽을 부풀려 몸을 지지해주는 시트가 오히려 방정맞은 느낌이다. 

예비고객들이 S-클래스에 기대할 조신한 몸가짐은 드라이브 셀렉트를 스포츠로 바꾸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되므로 맘편히 넉넉한 엔진힘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한가지 더, 휘발유 모델에 비해 주유소에 갈 일이 적어 편리하다. 전용도로 위주로 200km 주행 후 트립컴퓨터에 찍힌 평균연비는 12.5km/L(과거의 주행기록을 포함한 675km 구간의 평균연비는 8.4km/L)였다. 

기자가 광고 속의 사자는 아니지만, 그동안 뒷자리에 앉아야만 제대로 타는 것 같았던 롱 버전의 S-클래스가 운전자용 차로도 굉장히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잘 만든 광고의 힘일까? 지난해 가을 바뀐 새 S-클래스는 올해 라인업을 늘려 본격적인 판매구도를 갖춘다. 황금개띠 해에 울려퍼지는 사자후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글 민병권 기자
사진 이영석